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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 정은궐

Romance_y_ 2012. 5. 28. 15:56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후편으로

김윤희가 원래의 본인을 찾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계속 아슬아슬 김윤식으로 살아간다.

성균관을 수료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규장각 각신들이 된 4인방의 이야기는 쭈욱 계속되고...

마지막에 청국으로 몇년간 사신으로 가게되는데...

김윤식,윤희  남매가 원래의 본인으로 돌아올 절호의 기회가 되고...

다음편이 또 궁금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정조때 설치된 국립도서관 정도인 규장각이 이 소설에 의하면 의미나 규모가 그 이상인거 같아서 백과사전에서 좀 더 자세히 찾아보았다.

 

* 규장각 :

내각(內閣)이라고도 한다. 정조가 즉위한 직후인 1776년 3월 11일에 설치되었다. 대궐 안인 창경궁 금원(禁苑)에 설치하여 역대 국왕의 시문·서화·유교(遺敎)·고명(顧命)·선보(璿譜:王世譜)·보감등을 보관·관리했다.

규장각은 송(宋)의 용도각·천장각을 모방한 것으로서, 1463년(세조 9) 양성지의 건의가 있었으나 설치되지는 못했다. 1694년(숙종 20)에 어제·어필을 보관하는 소각(을 종부시의 속각으로 설치하여 처음으로 규장각이라고 이름했고, 숙종의 친필로 편액(扁額)을 내걸었으나 곧 폐지되었다.

정조가 즉위와 동시에 규장각을 설치한 것은 동궁시절부터 계획해왔던 것으로, 단순한 어제봉안(御製奉安)이나 국립도서관으로서의 기능 외에 보다 큰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규장각은 설치 초기에는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을 제거할 친위세력의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했다. 홍국영의 도움으로 홍인한·정후겸과 김구주 등의 척신세력을 제거하고, 또다른 척신으로 권세유지를 기도한 홍국영마저 제거한 이후 1781년 2월에 규장각의 체제를 새로이 정비했다. 이후 정조의 개혁정치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정책연구와 이를 위한 도서의 수집, 그리고 개혁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의 결집과 재교육 등을 위한 활동을 본격화했다.

규장각이 정조의 개혁정치를 위한 중추기관이었던 까닭에 규장각 각신(閣臣)은 광범한 기능을 가졌다. 각신은 승지와 같이 왕과 밀접한 시신(侍臣)으로서의 기능과 언관(言官)·사관(史官)·시관(試官)·경연관(經筵官) 기능 및 왕의 교서나 유서(諭書)를 대찬(代撰)하는 기능 등을 가졌다. 어제를 봉안하는 기구로서의 규장각은 전각(殿閣)제도로서 그 자체가 왕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어서 강력한 왕권을 지향하는 정조의 정치적 지향이 내포된 것이었다. 규장각의 검서관(檢書官)에 서얼로서 뛰어난 학식을 인정받고 있던 자들을 등용하여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주었던 것도 정조의 개혁정치와 규장각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규장각은 장용영과 함께 정조의 친위세력의 형성을 위하여 설치되었기 때문에 정조가 죽은 뒤에는 장용영의 해체와 함께 그 기능이 현저히 약화되어 단순히 역대 왕들의 어제와 도서를 보관·관리하는 기능만 가진 기구로 남았다.

1864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어제·어필·선원보첩 등이 종친부로 이관되어, 규장각은 도서관리 기능만 남게 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때 규장각은 궁내부 부속기관으로 편성되어 규장원으로 개칭되었고 종친부로 넘어갔던 어제 등이 되돌려졌다. 1897년 아관파천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본래 이름인 규장각으로 환원되었다.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규장각의 지위는 크게 격상되어 1907년 11월 비서 기능이 규장각으로 단일화되었고 대제학이란 직임이 설치되었다. 면모를 일신한 규장각은 도서정리작업에 착수하여 약 10만 권의 책을 1909년에 제실도서(帝室圖書)라고 명명하여 목록작성을 시작하였으나 나라가 망하면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1910년 8월 조선이 망하자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도서를 점유하였고, 1912년에 도서를 정리하여 도서의 이름을 규장각도서라 하였다. 1923년 경성제국대학이 설치되자 총독부 소관 도서가 모두 이관되었다가 해방 후 국립서울대학교가 개교하면서 부속 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1992년 3월 6일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분리되어 독립기관으로 되었다. 현재 도서 15만 점, 고문서 7만 점, 목판 1만 7,000여 점 등 도합 약 25만 점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