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과 흔적들...

독서록

명화잡사 - 김태진

Romance_y_ 2025. 9. 11. 18:52

머리로 믿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을 이길 수 없다.

모든 존재에는 자신의 역사가 있다_하이데거

 

1장. 신의 세계가 저물기 시작하다.

- 종교개혁에서 종교전쟁으로(1517~1648)


* 빵집 딸과 사랑에 빠진 로마 최고의 스타 화가

면죄부 남발의 이유가 되었던 산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가면 공사 책임자 라파엘로(1483~1520)가 보인다.
도미니크 앵그르, <라파엘로와 라 포르나리나> 1813, 포그 미술관


* 그림에 담긴 정중하고 우아한 거절

잉글랜드로 건너가 헨리8세(1491~1547)가 수장령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가면 당당히 여왕의 자리에 오른 앤 불린(1501?~1536)과 만날 수 있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53, 내셔널 갤러리


* 여왕이 된 지 9일 만에 쫓겨난 소녀

신교에 대한 가톨릭의 반격 시작점에 등장하는 인물은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 1세(1516~1558)이다. 제인 그레이(1536?~1554)는 이러한 흑백 뒤집기 게임이 낳은 무고한 희생양이었다.
폴 들라로슈,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 내셔널 갤러리


* 친오빠만 따르던 공주의 마음을 훔친 사랑꾼

30년 전쟁(1618~1648)의 시작점을 확인하려면 프라하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왕과 왕비로 즉위식을 가진 프리드리히 5세(1596~1632)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1596~1662)는 기나긴 재앙의 원인 제공자로 여겨지지만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건 부당하다. 판이 완벽히 깔린 상황에서 이들은 등떠밀리듯 뛰어든 배우였을 뿐!
미힐 얀손 판 미레벨트, <보헤미아 여왕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1623, 개인 소장



2장. 땅에서 바다로 부의 흐름이 이동하다.

- 절대왕정에서 계몽주의로(1661~1789)

 

*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렘브란트를 지켜준 여인 헨드리케

증권거래소가 성공 신화를 이어가던 시절, 번영의 정점으로 나아가던 암스테르담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던 초상화가 렘브란트(1606~1669)가 있었다.
렘브란트 판 레인, 〈다윗의 편지를 들고 있는 밧세바〉1652, 루브르 박물관


* 새장 속으로 들어가 비로소 자유로워진 새

귀족들을 제압하고 절대왕정을 이룩한 루이 14세(1638~1715)도 사생활에서만큼은 교회의 눈치를 봐야했다. 이로 인해 견딜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여인이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1644~1710)였다.
루이즈 데스노스, 〈왕실에서의 만남〉1838, 개인 소장


* 어머니의 철천지원수를 존경한 황제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는 계몽 군주로는 가장 성공한 사례였다. 장단점이 뚜렷한 인물이었음에도 전 유럽에 그를 존경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 중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요제프 2세(1741~1790)는 그를 향한 존경심이 남달랐다.
아돌프 멘첼, 〈1769년 나이세에서 열린 프리드리히 2세와 요제프 2세의 회담〉1855~1857, 베를린 고전회화관


* 목걸이 사기극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대격변의 시대라 하더라도 기득권은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권위를 상실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 중 가장 억울한 사례는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라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나쁘게 꼬이면서 그녀는 모두의 미움을 받는 악녀가 되어야 했다.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마리 앙투아네트와 아이들〉1787, 베르사유 궁전

 


3장. 혁명 이후의 낭만과 현실  

- 정치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1789~1900)


* 혁명의 괴물을 죽인 아름다운 여인

샤를로트 코르데(1768~1793)는 프랑스 혁명이 낳은 괴물을 죽였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혁명을 멈춰 세우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마라(1743~1793)를 죽인 사건은 혁명을 더 큰 비극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폴 자크 에메 보드리, 〈마라의 암살〉1860, 낭트 미술관


* 연인의 친구 앞에 누드 모델로 선 이유

산업혁명 당시 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난 제임스 휘슬러(1834~1903), 프랑스 혁명의 여진이라 할 수 있는 파리 코뮌에 뛰어들어 여생을 망명자로 살아야 했던 쿠르베(1819~1877), 이 두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언 히퍼넌(1843?~?)은 하층민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의 희생자였다.
귀스타브 쿠르베, 〈앵무새와 여인〉1866,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나폴레옹 3세에게 속은 합스부르크의 바보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은 주로 식민지 지역의 내전으로 전개되었고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낳았다. 오스트리아 황실에서 태어난 막시밀리안 황제(1832~1867)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한 어리석은 바보였다.
장 폴 로랑, 〈처형장으로 가는 막시밀리안 황제〉1882, 에르미타시 미술관


* 그림으로 남은 화가의 영원한 뮤즈

티소(1836~1902)가 사랑한 여인 캐슬린(1854~1882)은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나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들이 연인으로 지냈던 애틋한 사랑의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영국의 최전성기였다.

** 빅토리아 시대(1837~1891)

** 벨 에포크 시대(19세기말~1914)

** 팍스 브리타니카(1815~1914)
제임스 티소, 〈정원 벤치〉1882, 개인 소장



4장. 낙관과 전쟁의 시대, 울고 웃는 연인들  

- 번영의 환상에서 폐허로(1900~1945)


* 파란 폭풍 구름 위에서 잠 못 드는 남자

빈 음악을 대표하는 거장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아내 알마 말러(1879~1964)는 낙관의 시대를 상징하는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뜨겁게 사랑했던 연인으로서 그녀에게 집착하던 코코슈카(1886~1980)는 제1차 세계대전에 징병되면서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
오스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1914, 바젤 미술관


* 죽음을 간절하게 끌어안고 있는 소녀

에곤 실레(1890~1918)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요령을 발휘해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면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온 세상을 뒤덮은 스페인 독감에 희생되었다.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1915, 벨베데레 궁전


* 산산이 부서진 몸, 잔인하고 가혹한 사랑

프리다 칼로(1907~1954)는 공산주의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대표자 디에고 리베라(1886~1957)의 아내였던 그녀는 아픈 몸과 남편의 외도에 끝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성공한 화가로 자립하면서 오래도록 자신을 가두던 굴레에서 벗어났다.
프리다 칼로, 〈가시 목걸이 자화상〉1940, 개인소장